꽃샘추위를 이겨내고 피어나는 목련은 눈이 시리도록 예쁜 순백의 기상을 뽐낸다. 그에 반추하여 나 자신을 돌아본다.
인생의 무수한 소용돌이에서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남편과 만난 나는 여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 '외국인 등록증'을 발급 받아 한국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7개월이라는 긴 기다림의 시간을 마무리 하고 사실혼 여부를 확인하는 방문 조사를 무사히 마치고 발급 받은 '외국인등록증'!
감사한 마음과 함께 엄마의 고국에서 '외국인으로 등록'을 받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마음 한구석을 허전하고 움츠러들게 한다.
그렇게 절박하게 필요 했던 신분증! 그것을 받아 들고 눈물이 글썽이고 마음 한구석이 시려오는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외국인등록증'에는 엄마, 아빠가 지어준 김추월(추석전날 태어났다고 금빛 나는 가을 달에 비유하여 지어준 이름)이라는 이름 대신, 'JIN QIU YUE(진츄우웨이)'라는 영문 이름이 눈에 거슬리게 한다.
중국에서 태어나서 자랐어도 우리 민족의 전통 교육을 받으면서 한민족의 얼을 지켰다고 자부하면서 살아왔었고, 부모님 세대 고생 덕분에 우리말 학교에서 우리말을 읽으면서 당당하게 한글 이름을 가지고 살아오지 않았던가!
부모님이 늘 그리워하던 고국-대한민국! 정작 부모님의 고국은 모든 것이 익숙하고 낯설지는 않지만,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너무나 멀리 있는 그런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찌 나뿐이랴! 모든 동포들의 마음에 드리워져 있을 그늘이 내 마음을 어둡게 한다.
"전체적인 사회분위기에서 약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하나쯤은 스스로 알아서 다스려야지!"하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굳건히 하는데 이번엔 남편이 볼멘소리를 하신다."어~, 내 마누라를 왜 국민 모두의 배우자로 표현하느냐고?"하고. 그제야 우측 가운데에 체류자격 F-2-1(국민의 배우자)라는 글씨가 눈을 아프게 한다.
그 후로도 영문으로 표기된 외국인 등록증과 함께 많은 불편함이 따라 다녔다. 힘들게 얻은 직장에서 월급통장으로 한글이름이 있는 통장을 가져오라는데 은행에서는 외국인등록증에 근거하여 영문이름으로 통장을 발급하다 보니 모순이 아닐 수가 없었다.
재외동포법이 개정되어 발표 된지도 몇 년이 지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도 한참이 된다. 재외동포법에 따르면, 나는 '외국인등록증'이 아닌 '외국국적동포 국내거소신고증'을 발급받아야 되는 것이다. 엄마아빠 호적이 한국에 엄연히 남아 있는데 다문화가정에 분류가 되어 동포의 부류에서 빠지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섰다.
작은 카드 하나가 현실생활에서 이렇게 큰 문제를 야기 시키는 '외국인 등록증', 기술상 문제로 영문이름을 표기해야 된다면 우리 고유의 이름이 그 윗부분에 표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봄에 꽃샘추위를 머리에 이고 화사하게 피어나는 순백의 기상을 뽐내는 저 목련처럼 아픔 없이 부모님의 고국에 다시 뿌리 내리고 싶어진다.
김추월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