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울온지 반년이 가까와 온다.중국에서 책이랑 친숙히 손에 필을 들고 하던 일과는 별도로 한국에서 하는 일은 몸이 고달픈 일이 대부분이다.
한화엄마가 한국에서 운영하는 삽겹살집에 오늘까지 꼬박 5일째 설거지 일하러 가는데 몸이 피곤한 대신 처음 서울와서 머리 아픈 일 당해서 파출로 제일 가고 싶지 않은 식당인데도 퇴근전에 내일 오실거죠? 내일 오실거죠? 하는 한화엄마 그 서글픈 눈빛때문에 거절을 못하고 오늘도 달갑지않은 출근길에 오른다. 말이 설거지일 하러 가는것이지 실제로 한화 엄마랑 한담하러 간다면 더 적절할것이다. 지하철에 올라 한시간 40분동안 잠이나 푹 잘가고 눈을 감아 감아보지만 한화엄마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 울려오는듯하다.
돌이켜 생각하니 나한테 이처럼 매달리는 한화엄마와의 인연은 2년전 연길서 벌써 시작되였다. 즐겁지않은 지난일들이 먹구름처럼 꾸역꾸역 밀려오면서 한화와 유경이 성림이 걱정땜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추억의 배는 어느덧 나를 연길로 실어갔다.
00019682211 전화기에 뜨는 번호만 봐도 나는 통화 첫마디 인사를 무슨말로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부터 앞선다.
또 누군가가 급히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겨서 걸어오는 외국 전화일게 뻔하다.
딸 때문에 귀국했다가 한국에 다시 간지 정확하게 한달인데 전화는 50통도 넘어 걸려온 한화 엄마다. 통화가 가장 많은 날은 하루에 6차 짧아서 20분씩 걸려오고 길면 두시간도 걸려오는 전화때문에 시간이 길면 무슨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 맬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친구의 소개로 얼마전에 알게된 한화 엄마는 제일 처음으로 한국에 간것이 15년 전의 일이라고 했다.
음력설을 며칠 앞둔 어느날 한 멋진 커피숍에서 처음 한화와 한화 엄마를만난것이 일의 시작이다.
한화 엄마는 16년전 비자 유효기가 하루밖에 남지 않아서 한화를 해산하고 7일만에 애는 본가집 엄마한테 맡기고 인천행 비행기를 타고 돈벌러 떠난게 어제 같은데 시간이 참 유수 같다며 허구픈 웃음을 짓는데 얼굴에는 웃으려고 한다는게 차라리 눈물 흘리는 모습보다 더 어색했다.
외손녀만 키우면서 만년을 행복하게 지내던 본가집 엄마와 아버지는 6년전에 중풍으로 한달을 사이두고 운신을 못하게 되자 한화는 큰 아버지네 집에 가서 살게 되였다.큰 어머니와 큰 아버지가 한국으로 돈벌러 가자 4년전부터 여기저기 친척집과 전탁집으로 옮겨 살게 된 한화는 엄마 생각하면 애틋한 정보다 원망과 원한이 맘속에 가득차 있다고 말했다.
한화 엄마는 결혼하자마자 임신하게 되였고 세집 돈을 못내서 임신한 몸으로 세집을 4번이나 옮겨 살았었는데 화김에 한국 수속을 했는데 한화를 낳기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바로 비자가 떨어져서 해산하자마자 떠나야 한다는 브로커의 말대로 퉁퉁 부은 몸으로 고향을 떠난게 지금까지 한국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16년동안 한화는 한국에서 유행되는 이쁜 옷과 놀이감 먹는 간식까지도 모두 엄마가 보내줘서 살고 있다면서 돈이 모자라서 공부하지 않고 나돌아 다니는지 누가 한화더러 돈벌어서 살림에 보태 달란 사람도 없는데 한화 스스로 학교에 다니지 않고 노래방에 가서 하루에 50원 받고 아가씨질 한적도 있다고 했다.
엄마는 달마다 한화한테 인민페 3500원을 붙여주고 또 매달마다 한화가 사달라는 옷도 쇼핑몰에서 스스로 골르라고 해서 사서 보내주고 거이 매달마다 한화한테 들가는 돈이 4500원 된다고 했다.
한화 엄마는 다행히 한국에서 작지 않은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기에 한화한테 들가는 돈을 보내줄수 있다고 했다.조건이 좋으면 당연히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할게 아니냐고 한화 엄마는 넉두리를 하는데 이러는 엄마가 한화는 너무도 야속하고 돈 때문에 한국에 16년동안이나 머무르는 엄마를 이해할수 없다고 했다.
<<한화 엄마는 한국 생활에 습관 되였나요>>
할말이 찾지 못해 겨우 해본 나의 말이다.
<<돈벌고 나중에는 중국에 돌아와서 살아야죠>>
라고 한화 엄마가 말씀하는데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한화가 엄마한테 눈길도 돌리지 않고 하는 말 때문에 나는 무슨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한참동안 쩔쩔 맸다.
<<전번에 엄마가 이모랑 전화 통화하는 소리 밤중에 들었는데 아직은 인민페 1000만원이 안된다고 했죠? 엄마가 천만원 아니 2천만원 억대를 벌어 가지고 중국에 돌아오면 누구랑 그 돈을 같이 쓰려고 생각합니까? 아빠도 돈밖에 모르는 엄마가 싫다고 리혼하고 조용한 생활을 하면서 아지미랑 동생을 낳았으니 엄마는 나밖에 누구도 믿을 사람 없다는걸 난 너무 잘 알거든요. 지금도 그 돈을 벌려고 돌아오지 않으니 난 또 누구랑 같이 살라고 할건데요?>>
울분을 토로하는 한화의 눈에는 눈물이 꽉 차 있었다.
<<그 좋은 엄마집에 살 사람이 없다는게 어디 말이나 됩니까? 나는 엄마가 없는 집은 궁궐이라도 지옥같다고 생각하는데 엄마는 내 마음을 알고나 있습니까?>>
드디여 눈에서 눈물이 얼굴을 적셨다.
<<나를 낳은 엄마가 돈밖에 모르고 또 나를 이렇게 버리고 한국 가는데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 역시 돈밖에 모르거든요. 전탁비 2000원에서 먹이는건 최대 줄이고 더 많이 남기려고 하고 그래도 우리같은 애들끼리 모여서 같이 살때만큼은 고기도 잘 사먹고 우린 이젠 학교서도 퇴학맞고 <자유>를 얻었다고 하지만 우린 앞으로 뭘 어떻게 벌어먹고 살아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엄마 아빠가 옆에 없는 우리들을 학교서는 무단결석을 하면 선생님은 학교에 차라리 나오지 말고 있다가 시험칠때만 초중3학년 졸업장을 타기 위해선 이름만 써서라도 내면 된다고 합니다.>>
학교 가지 않는 애들의 마음속 고충을 처음으로 듣는 내 마음이 고추물을 먹은것처럼 아려났다.
<<우리 스스로 택한 길이니 억울해도 우린 어디가서 말할데도 없고 고중 시험을 쳐도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고중갈 엄두도 못내고 차라리 중퇴하는게 더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부 공부하고 잔소리만 해오던 한화 엄마는 딸애의 말을 듣고 놀란듯 두 눈이 점점 커지더니 나중에는 넋을 잃은듯 한곳만 바라볼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이제 엄마가 돈을 얼마나 벌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묵묵히 엄마가 늙어서 운신하지 못할 때를 기다리는 겁니다.>>
<<엉? 한화가 다음 말을 더 하면 엄마가 상처 받을것인데.....>>내가 걱정하던대로 한화는 그냥 할말을 홍수같이 다 쏟아냈다.
<<아마도 믿을 곳이 없으니 돈을 갖고 중국에 돌아올것이고 그 때면 엄마가 나를 전탁집에 버린것처럼 나도 로인 전탁원에 엄마를 맡기고 엄마가 벌어놓은 돈으로 남은 인생을 즐기다가 돈이 떨어지면 다시 볼겁니다.>>
드디여 한화 엄마는 머리를 숙이고 얼굴을 한화와 나한테 보여주시지 않았다. 하지만 한화의 말은 더 참혹하게 들려왔다.
<<연애는 이젠 너무 오래 해봐서 남자를 믿을수 없기에 결혼같은건 하지 않을겁니다. 엄마처럼 리혼하고 자식 버리는 일 나는 죽어도 하지 않을겁니다.
내 맘속에 엄마는 옆집 아지미보다 못한 존재입니다.그냥 나한테 돈은 주니 엄마라고 인정은 합니다.>>
<<한화야 듣는 엄마의 생각도 해야하지 않니?.....>>
<<내가 왜서 엄마 마음을 걱정합니까? 엄마도 내 걱정을 하지 않고 한국에서 사는데..... 내 꿈이 뭔가고 묻는 사람들 많은데 한마디로 말해서 살아있는 동안 엄마가 시름 놓을 날이 없이 되는 대로 살다가 엄마한테서 받은것만큼 엄마에게 되돌려주는게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내가 기회를 봐서 엄마한테 하고 싶었던 말인데 생각보다 좀 더 일찍 하게 되여서 마음이 후련합니다.우리 엄마 전화소리가 울리면 난 정말 미칠것 같은데 선생님은 괜찮습니까?>>
엄마를 바라보는 한화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 어려 있었다.
<<00019682211 이런 수자가 뜨면 무조건 받고 싶지 않은 엄마 전화임다.>>
힘든지 말을 멈춘 한화가 고요한 정적을 깨고 야유적은 웃음을 웃으며 또 말을 이었다.
<<나때문에 불안에 떠는 우리 엄마 울음소리 같아서 난 미칠것만 같습니다. 돈벌이에 혈안인 우리 엄마한테 이제 20년후면 뭐가 남을가요 이런 생각 해봤는지 참 궁금합니다. 하하하하....>>
덤덤히 아무렇지도 않게 술술 말하는 한화, 분노에 찬 한화의 눈빛, 히스테리적인 웃음을 웃는 한화 바라보는 내 마음은 서글프기 그지 없었다.
중국 조선족 사회서 심심찮게 볼수 있다.부모님한테 고마움을 갖고 커가야 사회인으로 앞으로 삶을 살아가기 쉬울건데.....
. 한화가 받기 싫다는 전화를 한화 엄마는 늘 나한화같은 삶을 살아온 애들이 한테 걸어온다. 돈은 걱정하지 말고 한화랑 대화 잘 부탁드린다면서 어떻게 한화를 어디라도 좋으니 공부하라고 설득해 달라는 부탁이 성화같다
돈 돈 돈 정말 개도 안먹는 돈이라고 누가 말했는지 모르지만 그 돈 때문에 민족이 몸살을 앓고 있는게 참 가슴 아픈 일이다.
한화 말대로 20년후 더 길게 50년후우리 중국 조선민족은 인구가 얼마나 될것이고 우리 연길은 한족과 조선족의 비례가 어떻게 될지 걱정된다.
미래는 그렇다치고 오늘 한화와 한화 엄마같은 가족이 대체 얼마나 될지 심사숙고 하지 않을수 없다.
받은것만치 돌려준다?
과연 뭘 돌려준단 말인가?
받은것만큼 돌려준다?
한화 엄마는 그 참뜻을 얼마나 알고 있을가?
한화가 말한것처럼 생각하는 우리 2세들이 얼마나 될지 참 걱정된다
우리 부모들은 자식과의 대화를 얼마나 잘 해가고 있는지도 짐작이 되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간에 절절한 사랑이 모자람이 엿보여서 정말 가슴 아프지만 뭐라고 할말을 찾지 못하는 내가 정말 작아보여서 슬프다......
<<우리의 열차는 종착역인 신창역에 도착했습니다 우리 열차를 이용해주신 여러분 안녕히 다녀가십시요>>
안내방송소리에 깜짝 놀라서 정신차려보니 나 혼자만 열차칸에 멍청히 앉아있다.
1년전까지만 해도 맘놓고 맡기려던 한화인데......
나의 무책임이라고 할가?
서울서 고등학교 다녀야할 딸애 따라 무작정 서울 온 내가 괜히 모든 학부모님들께 미안한 마음에 괴롭지만 현재로는 어찌할 방법 마저도 나지 않는 내가 스스로 봐도 내가 참 어이없다.
미안한 마음에 불편한 마음에 피하고 싶은 한화 엄마인데 언제까지 만남을 마감해야 할지 기약도 없는 삼겹살집.......
지하철역에 언제 나오셨는지 사장님이신데도 파출부로 오는 나를 마중나온 한화엄마가 저기서 손을 흔들며 반겨준다......
서울서 내가 한화엄마와 한화에게 도움될만한 일을 하고 싶은데 현재 내 능력으로 불가능이 백배다.
처음으로 내 능력에 자신없는 내 모습에 참 초라하다.
지루한 오늘하루 언제면 끝날지......내일은 또 와야할지 말아야할지 .......
회피할래야 회피할수도 없는 이 만남 빨리 결속짓고 싶은데 박도 빼도 못한다
마른 입안에서 침을 삼키는데 침은 없고 목구멍으로 빈 공기가 꿀꺽 넘어가면서 허구픈 웃음을 지으며 천근무게 발걸음으로 뚜벅뚜벅 한화엄마랑 함께 삽겹살집으로 향한다.
한화 엄마가 나를 매일 파출로 부르는 이유는 뭘가
일군은 따로 있는데 매일 나를 부르는 한화엄마에게 별 도움도 못 주면서 매일 이 먼거리를 오는 내가 해야 할일을 맞당히 찾지 못해서 불편하다.
오늘은 꼭 마감을 약속해야지......
참 우리 부모들은 전화 통화로 자식과의 대화를 얼마나 잘 해가고 있는지도 짐작도 가지않고 궁금증만 더해간다.
부모와 자식간에 절절한 사랑이 모자람이 엿보여서 정말 가슴 아프지만 뭐라고 할말을 찾지 못하는 내가 정말 작아보여서 슬프다......한화는 중국에서 엄마는 한국에서 나름대로 고생하지만 이런 사연이 한화와 한화엄마만의 일이 아닌게 현실이다.
돈을 안 벌면 안되는 엄마, 엄마를 이해 못하는 아이들 엇갈리는 고민을을 해결할 방법은 과연 없을가요?
우리모두 함께 해결책 찾아보면 어떨가요?